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라온 편집자입니다.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어느 여름날, 저는 키가 부쩍 자라 반에서 가장 큰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땐 지금과 달리 밖에서 뛰놀기를 좋아했는데요. 반바지를 입고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다가 문득 다리에 난 잔털들이 신경 쓰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버지의 면도기를 몰래 집어 들었고 다리 털을 몽땅 밀어버렸습니다! 며칠 동안은 다리가 매끈했지만, 이윽고 털은 더 굵고 성가시게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여름이 오거나, 치마를 입을 때면 수북한 다리털을 제모하는 게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내 털은 그렇게 깎고 뽑아대면서, 부끄럽게도 겨울이 오면 최대한 따뜻한 패딩을 찾아 남의 털을 뒤집어씁니다. ‘모피 없는 미래’를 꿈꾸며 만들어진 양방향 그림책 <엄마가 보고 싶은 아기 여우, 아기가 보고 싶은 엄마 여우>를 읽으며 저는 제 부끄러움을 떠올렸습니다.
거위, 양, 여우, 밍크… 추위를 막기 위해, 혹은 멋을 위해 인간은 매년 수천만 마리의 동물들을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모피 산업은 잔혹하기 그지없습니다. 동물들은 털을 생산하기 위해 작은 철장에 갇혀 평생을 보내고, 인간의 손에 의해 가죽째 벗겨집니다. 이제는 천연 모피를 대체할 인공 소재가 충분히 있는데도, 여전히 많은 생명들이 인간의 욕망 때문에 희생되고 있습니다.
|
|
|
<엄마가 보고 싶은 아기 여우, 아기가 보고 싶은 엄마 여우>에는 이 아픈 현실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책의 첫 장면에서 엄마 여우는 아기 여우와 꼭 붙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손이 나타나 아기 여우를 데려가는 순간, 배경은 차가운 철장으로 바뀌며 이곳이 우리임을 드러내죠.
<동물 유토피아를 찾아서>의 저자이자 대만에서 동물보호운동가로 활동하는 룽위안즈는 책에 실은 글 ‘동물 보호, 이젠 속도를 높일 때’에서 모피 산업의 잔혹함을 고발합니다. 모피 농장 업자들은 털이 고운 동물을 번식용으로 남겨두고, 높은 곳에 매단 채 인공 수정을 시킵니다. 새끼가 태어나면 이 그림책에서처럼 아기 여우를 엄마와 강제로 떨어트려 놓고요. 홀로 남겨진 엄마 여우는 당연히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책 속의 엄마 여우는 포기하지 않고 철장을 탈출하고, 아기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
|
|
한편, 책의 반대편에서는 아기여우가 어디론가 운송되던 중 도시 한복판에 떨어집니다. 아기 여우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도시 곳곳의 ‘주황색 털’을 따라 다닙니다. 아기 여우의 녹록지 않은 모험은 도시 환경이 야생동물에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유럽의 몇몇 도시에서는 야생 여우가 살고 있는데, 이 여우들의 평균 수명은 자연에 사는 여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
|
|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실제 동물들을 모델으로 합니다. 엄마 여우의 모델은 작가가 핀란드의 한 동물 보호소에서 만난 여우 오토(Otto)로, 모피 농장을 기적적으로 탈출한, 극소수의 ‘운 좋은 여우’입니다. 아기 여우의 모델은 대도시 베이징 한복판에서 길을 잃고 떠돌고 있던 북극여우입니다. <엄마가 보고 싶은 아기 여우, 아기가 보고 싶은 엄마 여우>는 단순히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별다른 고민 없이 선택하는 옷이나 장식품이 수많은 동물들의 삶과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목도리나 키링에 사용된 털이 동물 털은 아닌지 되짚어 보게 됩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생명을 대하는 마음을 배우고 내가 무심히 한 선택들을 돌아보게 하는 그림책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요? |
|
|
엄마가 보고 싶은 아기 여우, 아기가 보고 싶은 엄마 여우
스난난・룽위안즈 지음 | 스난난 그림
모피 농장에서 태어난 아기 여우와 그곳을 탈출한 엄마 여우가 서로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를 담은 양면 그림책. 실제 구조된 여우들의 사연을 바탕으로, 모피 산업의 잔혹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며 생명 존중과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
|
|
책 만드는 편집자는 무엇을 읽고, 보고, 쓰고, 어디에 갈까요? ‘편집자의 쪽지’에서는 그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소소한 취향을 소개합니다. |
|
|
#날개 편집자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지도 한 달이 되어 가네요. 구독자 여러분은 부국제 재밌게 즐기셨나요? 산지니 사무실의 위치는 무려 영화의전당 옆에 옆에 건물입니다. 영화의전당이 지척에 있으면 부국제를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을까요? 하하하… 저는 영화제가 시작되면 ‘개막식에 차가 막힐 것 같은데… 휴가 쓸까?’를 고민하는 한낱 직장인에 불과하답니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올해 들어서 자체적으로 비프데이를 정했습니다. 오후 반차를 내고 영화 두 편을 예매했습니다. 차이밍량 감독의 <집으로>와 로이드 리 최 감독의 <루의 운수 좋은 날>입니다. 사전 정보도 없이 날짜와 시간을 맞춰 예매한 영화였습니다. <집으로>는 한 남성이 자신의 고향인 라오스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아무런 대사 없이 라오스의 풍경과 사람들을 한 시간 동안 비춰줍니다. 안타깝게도 점심시간 이후에 보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영화였습니다. 다행히도 두 번째로 관람한 <루의 운수 좋은 날>은 매우 재밌게 봤어요. 뉴욕에서 음식 배달부로 일하는 중국인 루와 그의 딸이 보내는 이틀을 담은 영화입니다. 자전거도 도둑맞고 집까지 사기당한 루의 사정과는 달리 붙여진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이 재밌게 느껴졌어요. 우리가 잘 아는 그 소설의 제목도 떠올랐고요. 역시 부국제는 평소에 접하기 힘든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내년에도 자체 비프데이를 꼭 가져야겠습니다!
|
|
|
시와 소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다
정광모 작가론 북토크 |
|
|
“저는 살아남는(좌절되지 않은) 상상력이란 모두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해방의 상상력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용, 문학, 음악, 회화 등 우리 곁의 예술과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사물을 새롭게, 낯설게 보도록 해주었기 때문이지요. 권력은 물론, 인간을 무정부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상상력을 붙들어 매고 억압했죠. 또한 인간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기억인데, 그런 기억들로 만들어지는 게 예술이잖아요. 해방의 상상력은 권력화 되지 않은 것, 즉 예술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15일, 산지니X공간에서 정광모 작가론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이번 북토크에서는 작가님의 작품 중 장편소설 <유토피아로 가는 네 번째 방법>과 최근 출간된 소설집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를 중심으로 구모룡 평론가, 김만석 평론가와 함께 정광모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더불어 이번 북토크에는 이정화 시인도 함께했는데요. 이정화 시인은 2023년 문학동네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인께서는 정광모 작가의 소설집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에 수록된 작품들을 읽고 시를 쓰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셨는데요. 북토크에서 시들을 직접 낭독해주셔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
|
일하는 사람이 일구는 글쓰기
<문학/사상 11: 생동하는 글쓰기> 출간 기념 북토크 |
|
|
지난 10월 23일, 산지니X공간에서 <문학/사상> 11호 출간 기념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이번 북토크에서는 <문학/사상>의 편집위원인 김대성, 김만석 문학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김대성 평론가가 집필한 11호의 특집 원고 ‘일하는 사람이 일구는 글쓰기’를 중심에 놓고,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끈질기게 흐르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뭐라고 부를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여러 책들과 사례를 통해서 짚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반드시 무엇이 되거나 어딘가를 향하는 글쓰기가 아닌 너머로 가지 않아도 되는 글쓰기, 머무는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
|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국제아동도서전이 부산에서 개최됩니다. 부산국제아동도선은 국내 최초의 아동도서전으로,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 축제입니다. 이번 도서전은 부산 벡스코 제1전시장 3홀(부산 해운대구 APEC로 55)에서 12월 11일부터 12월 14일까지 열립니다.
주제는 ‘아이와 바다(The Young Ones and the Sea)’로, 동서남북으로 연결된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아동도서전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생명이 시작한 곳이자 꿈이 펼쳐지는 공간인 바다에서 모험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산지니 부스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북토크도 매일 준비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셔요!
|
|
|
편백나무 상자
사현금 무크 3
김하기, 강동수, 박향, 정인, 이상섭, 이미욱 지음
소설 동인 사현금의 세 번째 무크지. 이번 무크지는 김하기, 강동수, 박향, 정인 네 명의 사현금 동인에 이상섭, 이미욱이 참여해 죽음과 상실, 소외와 단절 그리고 연대와 구원의 의미를 다각도로 탐구한다.
표제작 강동수의 「편백나무 상자」는 암 투병 끝에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아내를 추모하는 남편의 이야기로 그는 아내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을 만들고 유골과 함께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내를 잃은 상실을 견디려 한다.
|
|
|
하근찬 전집 10 달섬 이야기
하근찬 지음
새마을운동의 열기 속에서 공동체의 자발적 힘과 연대를 그린 장편소설.
달섬의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두 남자 교사 백남기와 신영갑, 그리고 사환 남자아이 봉식은 이 학교에 여교사가 부임해 오기를 고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교대를 갓 졸업한 여교사 송인순이 이 학교로 부임해 온다. 송인순은 동료 교사들과 함께 자활학교와 새마을봉사회를 만들어 마을의 협력을 이끌고, 조개 양식으로 달섬의 자립을 이루어낸다.
|
|
|
하근찬 전집 14 징깽맨이
하근찬 지음
동학혁명과 민주화 시대가 맞닿은 운명을 서사로 풀어낸 장편소설.
한국전쟁으로 연인과 생이별한 역사학자 현중하는 대학 민속박물관장으로 취임하며, 존재조차 몰랐던 딸 연미와 함께 ‘혼이 담긴 징’을 찾아 나선다. 여정 속에서 그는 옛 연인이자 딸의 어미와 재회하며 운명적 순간들을 맞이한다. 이 소설에서는 현실의 인물들과 ‘징깽맨이 설화’가 교차하며 운명과 인연, 정한의 세계가 서사를 이끈다.
|
|
|
하근찬 전집 21 은장도 이야기
하근찬 지음
반복 속에서 피어난 생의 서사를 그린 하근찬의 미완성 장편.
「은장도 이야기」는 월간 《2000년》에 연재된 미완성 장편으로, 고희를 맞은 주인공 송 노인이 수몰된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과 일제 말기, 전쟁의 시간을 회고한다. 함께 수록된 중편 「직녀기」는 《현대문학》에 연재된 작품으로, 혼례를 앞둔 여성이 어머니에게 은장도를 물려받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두 작품은 서로의 서사를 반사하며, 전통적 여성의 운명과 그 안에서 움튼 생의 욕망, 시대의 폭력에 대한 하근찬 특유의 사실적 시선을 드러낸다.
|
|
|
주변부의 담론에 귀기울이는 반년간 비평지 <문학/사상> 11호: 생동하는 글쓰기가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11호에서는 기존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글쓰기에 주목하였습니다. 자세한 사항과 구독 신청은 위 이미지 클릭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학/사상>의 행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문학/사상>과 함께할 구독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
<엄마가 보고 싶은 아기 여우, 아기가 보고 싶은 엄마 여우>의
기대평이나 후기를 들려주세요.
아래 버튼을 클릭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