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소식 178호
누군가에게는 당연히 주어지지 않는 장례와 애도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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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편집자 초록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 적 있나요? SNS에서 종종 ‘내 장례식에 틀고 싶은 노래’, ‘내가 정하는 묘비명’ 같은 글을 보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저 역시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 무겁고 슬픈 장례식은 싫다거나, 어떤 분위기로 식장을 꾸밀지, 누가 찾아올지 등을요. 그러다 보면 상상은 ‘과연 누가 내 장례를 맡아줄까?’라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 가족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본 대부분의 장례식은 고인의 법적 가족이 주관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장례는 꼭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만이 맡아야 하는 걸까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서 의심하지 않았던 기존의 장례문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오늘의 산지니 소식을 시작합니다.
한국의 장사법은 고인이 사망하면 법적 가족이 장례를 주관하도록 규정합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누군가에게는 차별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혈연 가족과 갈등을 겪는 장애인이나 퀴어 등 사회적 소수자의 경우, 본인의 뜻과 무관하게 장례가 진행되어 존엄한 죽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퀴어한 장례와 애도>는 퀴어의 삶과 돌봄, 죽음과 애도 과정에서 나타나는 배제와 차별의 모습을 담은 인터뷰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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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기획하던 때, 저는 성소수자의 생애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어요. 성소수자의 특정 삶의 한 부분이 아닌 그 사람이 늙어가며 경험하는 사랑과 차별, 돌봄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중 그들의 ‘죽음’에 초점 맞춘 가족구성권연구소의 보고서를 발견했습니다. 짧은 분량의 보고서였지만 그 속에 담긴 퀴어들의 목소리가 너무도 강렬해서 이 이야기를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음이라는, 우리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왜 당연한 것이 아닌지, 왜 정치적 영역이 되는지 이전에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이었습니다.
책에는 인터뷰이들이 경험한 장례 과정에서의 차별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내며 돌봄을 주고받았을지라도 죽음을 맞으면 생전에 형성했던 이들의 관계는 아무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단순히 친구나 지인으로만 간주되고 고인의 장례 절차를 책임질 자격도, 고인의 유품을 처리할 자격도 갖지 못하는 것이죠. 퀴어가 생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지 않은 경우 남겨진 사람들 또한 고인과 자신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자격과 위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삶과 죽음에 있어 고인의 권리만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애도의 주체들 또한 자신의 삶이 존엄하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한국 사회에서 퀴어에게 장례는 이렇게 이중의 배제를 확인하는 장이 됩니다.
일단 아플 때부터 병원에서 배우자였으면 더 많은 질문을 나한테 하지 않고, 내가 있는 게 너무 당연하고, 나한테 많은 얘기들을 했을 거고. 어머니가 왔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 안 했을 거고, 호스피스 예약하러 갈 때도 본인 동의서 위임서 위임장 신분증 이런 거 다 챙겨 가야 되는데 그런 것도 사실 없어도 되는 거고. 장례식도 마찬가지고.
그 친구를 어떤 추모하는 과정이나 죽음을 기억하는 과정에서도 그런 소수자성 자체가 거세된 채로 진행되어야 하고. 그러니까 말할 수 없이 진행되어야만 하고 그 친구들은 그걸 다 앎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친구들의 모습을 나누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제대로 기억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얘기할 수도 없고.
이 책이 빛나는 지점은 퀴어가 장례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차별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 고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애도의 장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노력과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퀴어라는 정체성을 지우지 않고 적극적으로 장례 방식을 협상하는 등 퀴어들은 취약한 사회적 토대 위에서도 삶과 관계를 반영하는 장례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이들이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유대를 나누는 퀴어커뮤니티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고 집단적인 애도의 장을 만들어가기도 하는데요. 책에도 실린 예시를 잠깐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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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들은 구성원의 죽음을 기억하며 커뮤니티 밖으로 의제와 관계를 확장합니다. 청소년보호법의 동성애자 차별조항을 없애기 위해 활동했던 육우당의 16주기를 맞아 열린 ‘이상한 연대 문화제’ 광장 한켠에 마련된 추모 테이블입니다. 무지개색 양초와 영정사진, 고인의 유품 등을 올려놓고 퀴어커뮤니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구성원들은 먼저 간 동료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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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자 트랜스젠더, 장애인, 비건 당사자로서 여러 단체와 현장에서 투쟁했던 케이시느루모모를 추모하기 위해 진행한 추모식 사진입니다. 퀴어커뮤니티 ‘케이시느루모모와 친구들’은 사진과 같이 추모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고 개방 분향소를 설치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애도의 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퀴어한 장례와 애도>의 제목에서 말하는 “퀴어한” 장례, “퀴어한” 애도는 어떠한 장례와 애도일까요. 그것은 사회가 정한 기준으로 보면 “이상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현행 제도와는 충돌할지 모르나 내가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대로, 나다운 방식으로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것. 책에 실린 구체적인 퀴어의 모습들을 보면, 나의 정체성을 지우지 않는 것, 나다운 것이 바로 “퀴어한”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책에서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만들어가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장사법 개정부터 의료와 돌봄 체계를 개선하는 것까지, 제도적 변화뿐 아니라 가족과 관계를 바라보는 기존의 인식에 변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나다운, 퀴어한 장례와 애도가 실현 가능하다고 저자들은 말합니다. 몇 주 전 다시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이 떠오릅니다. 생활동반자법에서 ‘생활동반자’라는 새로운 관계를 인정하는 것처럼, 더욱 다양한 방식의 관계와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모두에게 존엄한 죽음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퀴어한 장례와 애도>가 그러한 논의의 장을 만드는 데 시작점으로 기능한다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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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한 장례와 애도>는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개최하는 제3회 앨라이 도서전과 함께합니다. 9월 한 달 간 열리는 앨라이 도서전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와 연대의 필요성을 담은 앨라이 도서를 알리고 읽기를 장려하는 행사입니다. 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의 가족, 친구, 이웃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산지니 독자 여러분은 지금 바로 앨라이 도서전에서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비롯한 퀴어-앨라이 도서들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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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한 장례와 애도
김순남, 김현경, 나영정, 이유나 지음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모든 권리가 법적 가족에게 위임되는 한국사회에서 죽음과 장례의 전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하는 성소수자들. 이 책은 파트너, 친구, 동료를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퀴어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제도적으로 ‘정상’으로 간주되는 장례 방식과 관계의 틀에 문제를 제기하고 폐쇄적인 혈연 중심의 한국 사회가 어떤 지점에서 애도와 삶의 권리를 박탈하는지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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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집자의 쪽지 코너는 특별히 디자이너의 쪽지로 준비했습니다. 디자이너들은 무엇을 보고 읽으며, 어디에 갈까요? 어쩐지 영감이 퐁퐁 샘솟을 것 같은 디자이너들의 일상을 만나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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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디자이너
어렸을 적부터 확신의 계획형 인간이었던 2촌 친척은 한 푼 두 푼 모아 레고나 프라모델을 사곤 했습니다. 그다지 각박한 사람은 아닌지라 같이 조립도 하게 해주고 만질 수도 있게 해줬습니다. 이때의 손맛은 저의 말랑한 대뇌피질에 ‘조립은 재밌는 거야’라는 문구를 음각 각인시켜주었고 가산 탕진형 인간이라는 속성과 좋지 않게 맞물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의) LED를 설치하고, 형광등을 끄고, 작은 창문 안을 들여다볼 때… 통장의 아픔과 현실의 피곤함을 아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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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의 고장에서 열린 지역 출판인들의 축제
제9회 청주 한국지역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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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소식으로 며칠 전부터 걱정이 많았던 청주지역도서전이 지역 출판인들과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무사히 마쳤습니다. 청주공예비엔날레와 함께 개최된 제9회 청주 한국지역도서전은 “지역, 책으로 북돋움”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콘셉트의 도서 전시와 출판인 워크숍, 학술세미나와 고인쇄박물관 금속활자 주조 시연까지 다채로운 행사들이 펼쳐졌습니다.
앞으로도 지역에서 출판하는 산지니를 비롯한 많은 지역 출판사들이 엮어내는 이야기들에 많은 관심과 응원 보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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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함께하는 책 축제,
광안리해변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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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목요일부터 23일 화요일까지 2025 광안리해변도서전이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무사히 마쳤습니다. 바다를 배경으로 여러 지역의 출판사와 서점들의 책들이 펼쳐져 있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또, 전시 공간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 부스에서 책을 구매하며 출판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독자들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산지니 부스에서는 사회과학서 맛집 답게 다양한 사회 이슈를 다룬 책들이 주목을 받았습니다ㅎㅎ 야외 무대에서는 다양한 북토크도 진행되었는데요. 산지니 <아버지를 찾아서>의 홍정욱 작가, 해피북미디어 <여행의 마음>의 조화진 작가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자세한 후기는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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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고, 내가 그린, 나의 꿈
김포독서대전에서 만난 아이들과 책 만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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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금요일부터 21일 일요일까지, 김포한강공원에서 열린 김포독서대전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독서대전에서는 아주 특별한 체험 이벤트와 함께했는데요. 바로 다양한 꿈을 가진 주인공 루나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타임머신 정비사 루나>와 함께하는 나의 꿈을 담은 책 만들기! 참여한 아이들과 함께 <타임머신 정비사 루나>를 읽고, 루나처럼 나의 꿈은 무엇인지 책을 만들면서 그림과 글을 통해 펼쳐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책 만들기 체험에 참여한 아이들의 꿈이 너무나도 귀엽고 흥미로웠다는 편집장님의 후기까지 전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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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문학의 거장 클라이스트, 그러나 한국 독자들에게 클라이스트는 아직 낯선 이름입니다. 클라이스트는 고대극의 요소를 셰익스피어 극작술과 결합시켜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가며 세계 문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클라이스트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강연이 개최됩니다.
클라이스트 문학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배중환 독문학자와 함께하는 이번 강연에서는, 클라이스트의 희곡과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에 담긴 실존과 본질의 비극성을 탐구해볼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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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더 소설 같아진 시대, 소설은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10월 15일 수요일 저녁 6시, 산지니X공간에서 ‘정광모 작가론 북토크’가 열립니다. <유토피아로 가는 네 번째 방법>,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에 담긴 정광모 작가의 문학 세계와 소설가로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세요. 이번 북토크에는 구모룡·김만석 문학평론가, 이정화 시인이 함께합니다. 북토크에 참여하면 특별한 굿즈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 유튜브 채널산지니 바로 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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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시대의 영화학
남북한 영화의 쟁점들
정영권 지음
한국전쟁과 냉전, 탈냉전의 시대를 지나며 한반도에서 영화는 단지 허구의 이야기를 넘어서 남북한 양국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능해왔다. 각 시대가 요구하는 국가 이데올로기는 영화라는 매체와 충돌하거나 교차하며,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하고 기이한 장르를 형성했다. 이 책은 남북한 영화에 담긴 한반도 현대사의 다양한 쟁점을 탐색하며, 영화가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 구조와 어떻게 얽혀 있었는가를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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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삶의 경계를 오가며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성찰을 이어온 유익서 소설가의 신작 소설집. 등단 이후 50여 년 동안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장편과 단편을 성실히 발표해 온 그는, 통영 한산도로 거처를 옮긴 뒤 17년간 고독한 세월을 보내며 문학적 갱신을 모색해 왔다. 이번에 발표하는 여덟 번째 소설집에는 문학으로부터 추방되고 있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회복에 대한 고민 속에서 빚어진 단편들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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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탐험대
꿈꾸는 보라매 27
김이삭 글 | 박인 그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이삭 작가가 동시집 『사자성어 탐험대』로 돌아왔다. 이번 동시집에서는 학생들이 알아두면 좋을 마흔 개의 사자성어로 40편의 동시를 창작하여 엮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는 사자성어와 작가의 상상력이 결합되어 재미난 사자성어 동시가 탄생했다. 조금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사자성어이지만 『사자성어 탐험대』에 수록된 동시를 읽다 보면 그 의미와 쓰임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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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가족을 만나다
당연해서 더 어려운 가족, 그림책으로 다시 읽다
방현주 지음
가장 가깝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 가족을 그림책으로 배워본다. 가족학을 전공한 방현주 저자는 부산가정법원 등의 기관에서 가족교육과 상담 및 웰가족교육상담센터 운영을 하고 있다.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책을 통해 부부, 자녀, 형재자매, 조부모 등 가족의 여러 관계와 부모의 이혼이나 죽음 등으로 인한 상실과 회복에 대해 살펴본다. 개인과 사회가 겪는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가족. 가족도 공부가 필요하다. 이 책과 함께 나의 가족이 당면한 어려움은 무엇인지, 어떻게 건강한 가족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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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담론에 귀기울이는 반년간 비평지 <문학/사상> 11호: 생동하는 글쓰기가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11호에서는 기존의 글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글쓰기에 주목하였습니다. 자세한 사항과 구독 신청은 위 이미지 클릭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학/사상>의 행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문학/사상>과 함께할 구독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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