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 <re, 셸리>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산지니 뉴스레터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소개와 출간 소감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설가 이정연입니다.
산지니에서 장편소설 <re, 셸리>를 출간하여 여러분을 온라인으로나마 뵈어 반갑습니다. 작품을 소개하자면 <re, 셸리>는 2024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간 지원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투고 끝에 산지니와 연을 맺어 작품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출간하여 기쁘고, 소식을 전하게 되어 벅찹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마냥 선하거나 악하지 않습니다. 굉장히 입체적인 캐릭터들인데요. 그래서 현실감이 상당합니다. 이런 양면성 있는 인물들을 그린 이유가 궁금합니다. ‘윤리적 딜레마’라는 소재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셨을 듯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입체적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합니다. 그건 개인 기질의 차이일 수도 있고, 주변과 다르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것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이 작품에서 현실감을 느꼈다면 아마도 스스로 혹은 주변의 누군가가 떠올라서 그렇지 않을까 하고 짐작합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내야 하니 현재의 인물과 소설 속 인물은 그와 비슷하게 살고 있으며, 고난을 겪으며 살아내지 않을까요?
‘딜레마’의 사전적인 정의를 살피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결정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을 말한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따라서 ‘윤리적 딜레마’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 속에서 인물이 살아온 내력에 따라 달라집니다.
소설에서 현대인이 처한 다양한 아이러니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딜레마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어느 곳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혹은 어떤 인물과 같이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이지요. 더불어 선함과 악함은 상황적인 사항일 때가 많아 전래동화나 위인전이 아닌 이상 함부로 무엇이 적당한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이 지홍의 처지라면, 승훈의 상황이라면 재욱이 된다면 정말 같은 선택을 할까요? 저는 사람과 상황마다 다른 선택을 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re, 셸리>는 서스펜스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촘촘한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도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에 동화될 것입니다. 지홍의 기억의 파편들을 볼 때나, 그가 병원에서 두려움과 혼란을 느낄 때 저 또한 심장이 두근거렸는데요. 혹시 작가님께서도 작품을 쓰시면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이나 인물이 있었을까요?
이 작품을 서스펜스 소설로 보셨다니 글쓴이라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지홍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비단 가정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배운 게 많지 않고, 성장하면서 누군가에게(심지어 식구조차) 물려받은 것이 없으며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없어 외로운 삶을 살았죠.
그런 까닭으로 작품에 긴장감이 느껴지는 대부분이 쓰는 데에 힘들었습니다. 살인은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봤고, 아동 학대나 학교와 직장에서 따돌림은 분위기였을 뿐 직접 당한 적은 없습니다. 살해 장면을 목격하고, 범죄를 은닉하는 행동도 직접 경험보다 간접 경험과 문학적인 상상을 더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어려운 장면을 꼽으라면 사람을 죽이고, 방관하고, 범죄를 도모하는 부분도 힘들었으나 엄마의 죽음을 모른 척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범죄 일당과 도모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경험이 없었기에 간접 경험과 상상의 괴로움이 필요했습니다.
독자들이 제가 그린 장면을 보고 혼란과 두려움을 느꼈다면 한편으로 작품이 그럴싸했다는 감상으로 보여 소설가로서 뿌듯합니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서사가 퍼즐처럼 맞춰지는 구조가 독특합니다. 이와 같은 시간 배열은 처음부터 계획된 구조였나요, 아니면 쓰는 도중 자연스럽게 형성된 건가요?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설정은 처음부터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편소설이 아니고 장편소설이다 보니 나중에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독서를 며칠 쉬면 따라잡기 힘들다고 의견을 내더군요. 한마디로 시간을 내어 보지 않으면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조언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민해낸 방법이 그 일이 일어난 해를 소제목으로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가 있으시다면 소제목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번 작품 속에는 ‘샐리’라는 이름이 중요한 키워드로 등장합니다. 샐리는 지홍이 대학시절 연기했던 연극의 주인공으로 천진하고 밝은 성격입니다. 샐리를 연기하기 위해 명랑한 목소리로 빠르게 얘기하다 보니 지홍은 ‘셸리’라고 잘못 발음할 때가 많았는데요. 작품 속 ‘샐리’가 지닌 의미와, 제목이 <re, 샐리>가 아니라 <re, 셸리>인 이유를 말씀 부탁드립니다.
소설에서 주요 화자는 지홍입니다. 지홍은 샐리이고, 샐리는 지홍이죠. 동기들 앞에도 나서기 두려워하는, 어찌 보면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지홍입니다. 발음을 빠르게 하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겁나 빨리 연극을 끝내고 싶은 지홍의 심리에서 기인합니다.
작품이 <re, 샐리>가 아닌 <re, 셸리>인 이유는 지홍이 돌아가고 싶은 대상이 샐리일 테지만, 당시의 어리숙하고 풋풋한 시절의 지홍을 그리워하고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실제의 ‘지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작가님의 셸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거에 작가님의 셸리는 어땠는지, 그리고 어떤 셸리를 꿈꾸고 있으신가요?
이제 제 과거(?)를 밝힐 시간이 왔군요. 저는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대학은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원에서 아주 잠시 ‘소설’을 공부하였으나 두 학기를 마치고 그만두었습니다. 그 뒤로 전산직으로 공기업에 입사했으나 흥미를 느끼지 못해 다른 일을 꿈꾸다 홍보팀으로 업무를 바꾸었습니다. 결국에는 그 회사도 그만두고 소설을 쓰고 있고요.
제 안의 셸리는 바로 지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주 오래 돌아왔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이지요.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나 살아온 것보다 인생이 아마도 더 길 테니 지금의 셸리를 잘 키워 더 나은 셸리로 성장하고 싶어요.
요즘에는 환영하지 않는 미스코리아는 아니더라도 근육을 잘 키워 미스코리아 보디빌더로는 키우려고 합니다.
몰입감 있는 스토리와, 충격적인 사건 전개를 가지고 있는 이 책은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지홍, 승훈, 재욱 역에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가 있으신가요?
제 욕망을 어떻게 아셨는지요.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장면을 상상하느라 몇 영화와 드라마를 떠올렸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살해나 살해 공모는 직접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요.
뜻이 있는 제작자나 극본 작가를 만나면 이 소설을 원작으로 같이 작업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홍은 이중적인 면을 지닌 배우가 캐스팅되면 좋겠어요. 제 바람이니까 아이유(이지은), 김태리, 한지민, 노정의 배우를 희망합니다. 어떻게 보면 착한 사람인데 분장과 말투를 고치면 악한 인물로 보일 수 있는 배우지요.
승훈은 지홍의 남자 버전입니다. 멀리서 보면 어리숙하나 사실 욕망이 가득한 인물이지요. 이도현, 남주혁, 추영우, 여진구 배우가 어떨까 합니다.
재욱은 능력은 있으나 속을 알 수 없는 매력적인 배우가 맡게 될 겁니다. 희망하는 배우는 요즘 영화와 드라마에서 만나기 어려운 원빈 배우가 하면 좋겠고, 현빈, 박보검, 공유, 강동원, 박서준, 김우빈, 이병헌 배우도 좋겠습니다. 적고 보니 이 정도 배우라면 영상은 흥행이 확실히 되겠네요.
저는 이미 책 후반부 ‘작가의 말’을 읽어서 알지만, 아직 안 읽은 독자분들을 위해서 여쭤봅니다. <re, 셸리>를 읽고 난 후 독자들이 어떤 감정이나 메시지를 가장 오래 품고 가길 바라시나요?
‘작가의 말’에도 남겼지만 저는 이 작품의 독자들이 ‘자신만의 셸리’를 찾기를 바랍니다. 어릴 적 혹은 순진했던 때 우리가 꿈꾸었던 본연의 자신을 만나기를, 그래서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잘 살아낸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며 앞으로도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길 희망합니다. 그에 따른 고민은 삶의 묘미니까 즐기면서 나아가시길요.
어려운 말을 너무 쉽게 했네요. 저도 제가 여러분께 바라는 것처럼 저도 살아가길 바랍니다.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를 들으니 이번에는 작가님께로 시선을 옮겨보고 싶습니다. <re, 셸리>를 집필하면서, 작가님께서는 어떤 내적인 변화나 성장을 경험하셨을까요?
이 작품은 사람의 생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사연이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욕심냈던 출판사는 내부 사정으로 저와 계약을 계속할 수 없었고, 계약 해지하고 얼마 안 되어 제 작품이 제10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해서 다른 출판사를 찾을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학창작 산실 발간 지원으로 <re, 셸리>가 선정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산지니와 계약했고, 몇 개월 동안 산지니와 퇴고한 끝에 출간했습니다.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하고 발간하면서 2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2년 동안 다양한 심적인 변화를 느꼈습니다. 소설 초고를 썼을 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간 지원으로 선정되고, 최근 작품을 발간했을 때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고, 계약을 포기하고 출간이 늦어졌을 때는 답답해서 정말 출간까지 갈 수 있을까 하며 포기 비슷한 실망도 했습니다.
결국 세상에 나와 여러분께 제 작품을 보여주는 지금은 행복하니 이런 감정 또한 즐겨야 저와 제 작품이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취미가 있는지, 또는 요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네요. 어려서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만큼 힘든 질문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일은 소설 같은 글을 읽거나 잘 만든 영화를 보는 것이에요. 그러나 ‘좋아하는’과 ‘잘 만든’이 지극히 주관적인 말씀이라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여유가 있을 때 기분 좋게 하는 것이 말씀드린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의 관심은 앞으로 쓸 거리를 찾는 거예요. AI와 로봇도 관심이 있고, 이것이 통용화될 사회를 그리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금 먼 미래가 될 테지만 역사 소설에도 관심이 있어 국사와 세계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소설가로서 이번 작품을 비롯해 많은 좋은 작품을 써오셨는데요. 소설가는 어릴 적부터의 꿈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소설가가 되셨나요?
어릴 때 말씀을 드리자니 웃음이 슬쩍 나요. 한마디로 저는 ‘착한 딸’이었어요. 옛날이야기에서 나오는 심성 고운 딸은 아니고, 큰 말썽을 부리지 않는 별문제가 없는 딸이었어요. 이를테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선생님께서 집에 전화한다거나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일은 없었습니다.
착한 딸이 꾸는 꿈은 보통 어른이 좋아하는 직업입니다. 저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좋아했던 ‘의사’가 꿈이었고요. 생각해보면 그건 제 꿈이 아니라 저와 가까운 어른이 꾸었던 꿈이 아니었나 싶어요.
소설과 굳이 연결 짓자면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책을 좋아하니 글을 쓰는 것도 두렵지 않았고, 지금도 책을 좋아해 나중에 더 유명해지지 않더라도 저에게는 귀중한 취미가 남으니 손해 보지 않는다는 자기 위안을 가끔 합니다.
‘언젠가는 글을 쓸 거야’하고 자주 말하곤 했었는데, 그 입버릇이 직업이 되었습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오래 꾼 꿈을 지금 하지 않으면 못 할 거라는 절박함에 용감하게 직장을 때려치우고 나왔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혹시 다음 작품에 대한 힌트도 살짝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러시아 문학을 좋아해요. 러시아 문학은 당연히 우수하지요. 그런데 제가 그쪽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수함보다 그것들을 보며 위안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도 이런 감정을 느꼈고, 이런 일로 어려워했구나’, ‘사람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으니 나만 외롭다고 느낄 필요는 없구나’, ‘사랑도 증오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니 작은 일에 분개하지 않아도 되구나’ 등등.
오래전 러시아 문학가들이 쓰고 제가 그 글을 통해 느꼈던 것처럼 제 글의 독자들이 제 글에 위로받고, 희망을 꿈꾸길 바랍니다.
다음에 발간할 작품은 현재 쓰고 있습니다. 법원 기술 감정인에 관한 소설인데, 여러 인물이 나오고, 그중 두 명을 주 화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법원 기술 감정인(鑑定人)과 공장 노동자로서 감정 기복이 심한 감정인(感情人). 그들은 살아온 배경이 다르고, 직업이나 성향도 다릅니다. 다만 두 사람은 다르면서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비슷해 연대하여 서로를 존중해 보조하고 같이 갈 길을 찾아갑니다.
소설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어져 3년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전개 방식이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고난을 겪으며 함께 나아간다는 점에서 같은 형식이지만 다른 이야기와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법정물이되 그 안에 나오는 사람들은 여러 방면의 사람이 섞여 현대 사회를 세심하게 들여볼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남녀 주 화자가 사랑의 감정보다는 동료로서 연대 의식을 가져 본격 법정 스릴러 소설 혹은 직장 소설의 위치를 차지할 것입니다.
이정연 소설가와의 대화, 어떠셨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모든 이들에게 <re, 셸리>가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