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편집자 초록입니다. 산지니 소식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 같아요.
지난 3월 21일은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인종 차별 철폐의 날’이었습니다. 인종 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목소리와 미국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정책의 폐기 흐름이 공존하는 지금, 저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인종 차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20세기 미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인종 차별로 소수자들이 고통받았지요. 흑인은 백인과 같은 학교를 다닐 수도,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20세기 미국에서 벌어졌던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께 들려드리려 합니다. 인종 차별을 조명한 책은 이미 많기에 더 색다른 이야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분들도 많을 듯합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소개할 책은 조금 특별합니다. 바로 한국 독자들이 무척 사랑하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와도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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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체성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마 ‘유대인’일 것입니다. 유대인 또한 흑인 못지않게 심각한 차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한나 아렌트는 1959년 발표한 한 에세이 ‘리틀록 사건을 돌아보며’에서 백인과 같은 학교에 등교하기 위한 아칸소주 리틀록의 흑인 운동을 비판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도대체 왜 아렌트는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했던 걸까요? 한나 아렌트를 오랜 시간 연구한 마리 루이제 크노트 또한 저와 비슷한 의문을 가진 듯합니다. 그리고 <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에서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이 유대인 박해와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살피고 한나 아렌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분석, 비판합니다.
아렌트에게 흑인 차별은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며 학교에서의 인종 차별 철폐는 정치적 과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였습니다. 그는 흑인 대표 단체가 일반적인 인권, 시민권, 보통선거권이 아니라 노동, 주택 시장, 교육과 같은 사회적 차별에 집중하는 것을 비판하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리틀록의 사례를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리틀록 아이들은 수많은 백인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는데요. 아렌트는 아이들은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리틀록의 아이들을 어른의 싸움에 끌어들인 흑인 집단에 우려를 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아렌트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20세기 당시 흑인들의 반응을 보면 적어도 당사자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듯합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잘 알려진 랠프 엘리슨은 한 인터뷰에서 아렌트를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아렌트는 흑인 부모가 자녀를 그런 적대적인 선을 넘어 통학시키는 심정이 어떠했을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말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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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렌트도 이 인터뷰를 본 듯합니다. 1965년 그는 엘리슨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냅니다. 사과의 편지였습니다. “어쨌든 저는 제 잘못을 인정합니다. (…) 너무나도 정확한 당신의 소견 덕분에 제가 상황의 복잡다단함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았어요.” 편지에서 아렌트가 고백한 것처럼, 저자 또한 아렌트가 유대인으로서 경험한 차별과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겪은 차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유럽의 유대인에게 흑인의 것과 같은 기나긴 노예의 역사는 없었으니까요. 아렌트 역시 유대인이었지만 그러한 이유로 대학입학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당시 흑인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런 이유 없이 두들겨 맞고 살해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1954년 연방대법원의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은 위헌’이라는 판결은 흑인들에게 큰 환호를 불러일으킬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니 엘리슨이 아렌트의 주장에 격분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저자는 책에서 단순히 아렌트를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흑인의 상황에 대해 문외한이었을지는 모르지만, 흑인과 백인의 불평등을 옹호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합니다. 논란이 된 바로 그 에세이에서 아렌트는 흑인의 투표권, 시민권과 같은 기본권은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노예제도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흑인에게 능동적인 정치 참여를 보장할 권리를 부여하는 평등 수정헌법을 제안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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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물이 살았던 뉴욕의 리버사이드 드라이브가(출처: 위키피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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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는 ‘370 Riverside Drive, 730 Riverside Drive’입니다.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은 뉴욕의 같은 거리, 리버사이드 드라이브가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고작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 살았던 두 인물 사이에 이렇게 큰 생각의 차이가 존재했었다니. 아이러니한 지점입니다. 그러나 인종 차별에 대한 아렌트의 주장과 흑인으로서 엘리슨의 경험과 의식은 곧게 뻗은 거리처럼 평행선을 달린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아렌트의 편지와 행보를 통해 그의 정치적 목표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렌트는 분명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헌법적으로 공존하기를 바랐습니다.
오늘 제가 전한 한나 아렌트와 20세기 미국의 인종 차별 이야기, 어떠셨나요? <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에서 저자는 20세기 중반 벌어졌던 두 인물 간의 첨예한 논쟁을 통해 오늘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인종 차별에 대한 보다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한 편의 에세이와 편지에서 시작된 유대인 철학자와 흑인 소설가 사이의 충돌과 대화를 깊이 알고 싶은 산지니 독자분들은 <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에서 남은 이야기를 확인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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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편집자는 무엇을 읽고, 보고, 쓰고, 어디에 갈까요? ‘편집자의 쪽지’에서는 그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소소한 취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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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편집자
집순이인 저의 활동반경은 서면-광안리가 다입니다. 그 이상은 저에게 너무 멀어요. 그래도 올해는 서면에 벌써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요. 갈 때마다 방문했던 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산지니 편집자들과도 함께 가서 즐겁게 떠들었던 기억이 있는 서면의 ‘황혼’입니다.
황혼은 커피, 맥주, 칵테일, 위스키 등 다양한 음료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카페 겸 펍입니다. 내부가 불멍 캠핑장, 오두막 감성의 실내 공간, 텐트룸 컨셉으로 나뉘어져 있어 취향에 맞게 골라 앉기 좋습니다.
황혼이 좋은 점 중 하나는 외부음식 반입이 가능하단 건데요. 바로 근처에 서면 이재모피자 본점과 2호점이 있어서, 그 유명한 이재모피자를 포장해오기 좋습니다. 덕분에 웨이팅 없이 뜨거운 피자를 바로 먹을 수 있었어요. 곁들여 먹기 좋은 맥주 종류도 아주 다양하답니다. 또 의자가 생각 외로 매우 편안합니다. 나를 버텨낼 수나 있을까 싶은 캠핑용 의자지만, 막상 앉아보면 안락의자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의자에 푹 파묻혀서 디지털 불멍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아요. 마지막으로, 황혼을 방문할 때마다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합니다! 황혼에는 작은 브라운관 tv 모양의 기계가 있는데요. 그 기계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답니다. 사진은 종이에 출력되어 영수증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여러 번 찍을 수 있고 무료입니다!
다 쓰고 나니까 광고 같네요. 하지만 저는 황혼과 어떤 관계도 없습니다…
✓ 부산 부산진구 전포대로209번길 17-6 2층
✓ 영업 시간: 12:00~24:00(금, 토 12:0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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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지는 바다, 꽃 피는 고래>
정일근 시인 북토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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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4월, 등단 40주년을 맞아 ‘고래 시집’ <꽃 지는 바다, 꽃 피는 고래>를 출간한 정일근 시인의 북토크가 열립니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이 문학 생활 40년 동안 써내려간 고래 시를 한데 모으고 새롭게 쓴 고래 시 10여 편을 수록하였습니다. 정일근 시인의 첫 번째 시집에서부터 등장하는 고래는 40년 동안 시인을 계속해서 따라다녔습니다. 시집을 통해 고래와의 인연, 고래에 대한 감사와 존경,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는 시인의 마음을 북토크 현장에서 고스란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뜻깊은 시간이 되실 거예요.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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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하 지음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국민작가 염상섭. 민족과 사회(계급) 사이에서 중도적인 태도로 횡보를 일관한 문학가로 이해되어온 그는 문학을 방법론으로 삼아 근대성의 문제를 탐구해온 비판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염상섭이 남긴 문학 작품과 다양한 곳에 발표한 저술을 통해 그가 제시한 해방의 목표와 현실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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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위해 또 떠납니다
일상의 스펙트럼 11
우지경 지음
13년째 세계를 무대로 가이드북을 쓰고 있는 여행작가의 일과 일상을 담은 에세이. 여행을 좋아하던 저자가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작가에 도전하게 된 계기부터 여행작가의 여행과 글쓰기 노하우, 여행지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상황과 프리랜서로서 느끼는 즐거움과 불안함, 그리고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한 노력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에피소드와 함께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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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셸리
이정연 장편소설
제10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이정연 소설가의 장편소설. ‘지홍’은 가까스로 대기업에 입사하지만 9년째 대리 직급에 머물러 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인지 몇 년째 중요한 업무는 맡지 못한 채, 팀장 ‘재욱’의 잡다한 일을 처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대학교 동기인 ‘승훈’을 우연히 만난다. 십여 년 만에 ‘승훈’과 마주한 순간 기억 저편으로 묻어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그날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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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시인선 024
윤동재 시집
윤동재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들려주듯 시를 써왔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가 절집을 여행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시로 풀어냈다. 이른바 ‘절집 몽유기행시’이다. 시집에 수록된 70편의 시 중 대다수는 한국 각지의 절을 배경으로 한다. 서울 진관사, 영주 부석사, 영암 도갑사 등 절집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유는 독자들에게 마치 템플스테이를 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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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담론에 귀기울이는 반년간 비평지 <문학/사상> 10호: 대양적 전환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10호에서는 한국문학을 대양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사유하고 설명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담긴 글들을 실었습니다. 자세한 사항과 구독 신청은 위 이미지 클릭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학/사상>의 행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문학/사상>과 함께할 구독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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