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소식 199호
존엄한 죽음, 법은 있는데 시스템은 없다
<유예된 죽음>
|
|
|
엄마와 TV를 보면 온갖 말을 하게 됩니다. “저 옷 이쁘네.”, “저 사람 몇 살이야, 이제?” 등. 마치 어떤 말을 얹기 위해 시청을 하는 것처럼 수많은 문장을 흘려보냅니다. “엄마는 내가 외국인 남자친구 데리고 오면 어쩔 거야?”처럼 답변이 궁금한 질문을 하기도, “만약 내가 사고가 나면 인공호흡기 부착은 하지 말고 화장해줘.”처럼 대뜸 무거운 주제를 던지기도 합니다. 인공호흡기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고 한 말이었습니다. 생명을 억지로 붙잡고 있다는 느낌에 저는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거든요. 엄마는 “너는 뭐 불길하게 그런 말을 하니.” 하면서도 “나도 하지 말아라. 다 힘든 일 같더라. 죄책감 느끼지 말고….”라며 내던지듯 말하고 주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렵습니다. 마치 입에 올리는 순간 정말 그 일이 벌어지기라도 할 것처럼요.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에둘러 표현하고 죽는 방식에 대해서는 아예 삼켜버립니다. 그래서 엄마의 “나도 하지 말아라.”라는 말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흩어졌습니다. 정작 그 순간이 오면, 저는 엄마가 흘리듯 뱉은 그 말 한마디에 기대어 인공호흡기를 부착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지도 모르는데도요. |
|
|
<유예된 죽음>을 다듬으며 저는 그날의 대화를 떠올렸습니다. <유예된 죽음>은 죽음의 법적 제도와 그 속에 실현되지 못한 존엄한 죽음을 직면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2018년,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의료(치료 효과는 없지만 환자가 목숨을 겨우 이어 가도록 하는 처치나 시술 따위의 조치. 심폐소생술, 인공호흡,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이 해당.)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만들어졌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3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임종의 순간이 오면 이 의향서는 자주 무력화됩니다. 의향서는 임종 과정 진입이 공식 확인된 후에야 효력이 생기는데, 그 판단 자체가 의료진에게 상당한 법적·윤리적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환자 본인이 명확히 뜻을 밝혀두었어도 병원은 관행적으로 가족에게 다시 묻고, 짧은 시간에 결정을 내리길, 가족 전원이 합의하기를 강요합니다. 급박한 선택의 순간에서 가족들은 서로의 기억과 근거에 기대어 다른 답 내놓기도 합니다.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겠다던 법은 어느새 사라지고 임종의 자리는 갈등과 분쟁의 자리가 됩니다. |
|
|
문제는 결정의 순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해도 그 이후를 받쳐줄 호스피스 병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외국인과 무연고자는 애초에 제도 설계에서 빠져 있고, 병원마다 갈등을 조율해야 할 공용윤리위원회는 인력과 예산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합니다.
이처럼 <유예된 죽음>은 마지막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법이 현장에서 왜 작동을 멈추는가를 다룹니다. 저자들은 의료진과 환자, 가족 그리고 변호사, 중환자의학과 교수이자 임상윤리 연구자, 호스피스 의료진, 웰다잉 활동가 등 여섯 명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며 이 균열을 다각도로 짚습니다. 이들의 진단은 공통적으로 하나를 가리킵니다. 법은 권리를 선언했지만,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절차와 인프라, 예산은 뒤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존엄한 죽음이라는 말은 있는데, 그것을 뒷받침할 시스템은 없는 셈입니다.
<유예된 죽음>은 엄마와 제가 나눈 짧은 대화가 실제로는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묻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정말로 힘을 가지려면, 그 말을 존중할 절차와 인력과 병상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죽음을 말할 용기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 말을 실현시켜줄 시스템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존엄한 죽음에 대한 논의를 끝내지 못했습니다. 존엄한 죽음은 여전히 유예되어 있습니다. 그 빈칸을 채우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
|
유예된 죽음 연명의료 중단을 둘러싼 선택과 갈등의 기록 김혜영, 손영하, 이서현 지음
이 책은 의료 현장을 직접 취재한 세 저자가 환자, 가족, 의료진을 만나며 한국 사회의 죽음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기록이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낸 변화뿐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혼선과 갈등 그리고 제도의 한계를 구체적인 사례로 드러낸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이들이 여전히 ‘원하지 않는 연명의료’를 경험하고 있는 걸까. 저자는 그 구조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
|
|
에바 틴드의 장편소설
<민 킴>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
|
|
<뿌리>로 한국 독자들을 만났던 에바 틴드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민 킴>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에바 틴드 작가는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되었습니다. <민 킴>은 작가의 자전적 장편소설로, 해외입양의 이면과 정체성, 뿌리에 관한 문제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덴마크로 입양된 ‘김남숙(에바)’과 ‘김미인(꿀마이)’은 펜팔 친구로 지내다 에바가 12살이 되던 해에 연락이 끊깁다. 30년이라는 긴 공백 후, 재회의 자리에서 꿀마이는 입양 가정에서 성장하며 겪은 학대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에바는 그 이야기를 듣고 덴마크에서 입양아로 자라는 일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아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책을 쓰기로 결심합니다. 최근 국제입양과 기록 조작, 입양인의 알 권리 문제 등이 다시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서평단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
|
책 만드는 편집자는 무엇을 읽고, 보고, 쓰고, 어디에 갈까요? ‘편집자의 쪽지’에서는 그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소소한 취향을 소개합니다. |
|
|
#라온 편집자
대만에 직접 가서 한국 도서들을 소개하는 ‘찾아가는 타이베이 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책을 잔뜩 실은 캐리어를 끌고 도착한 대만은 정말 습하고 더웠습니다. 푹푹 찌는 날씨에 땀으로 온몸이 젖고 있는데, 거리를 같이 거니는 대만인들은 이 정도는 더위도 아니라는 듯 정말 뽀송해 보여 당황했습니다. 다행히 행사장은 추울 정도로 냉방이 빵빵했지만요.
행사에 앞서 서점에 들렀는데, 중앙 판매대를 자기계발서와 실용서, 심리서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저작권 미팅에서도 많은 출판사가 심리서와 자기계발서에 관심을 보였고, 미팅을 도와주신 대만 통역사 역시 가장 좋아하는 분야로 자기계발서를 꼽았습니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대만 독자들에게는 자기계발 분야가 문학 못지않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범생을 지향하는 문화가 있다는 대만의 국민성이 반영된 걸까요?
이번 미팅에서는 산지니의 실용서를 비롯해 소설, 그림책, 에세이 등 다양한 도서를 선보였습니다. 해외에 책을 소개할 때는 한국적인 매력을 살리면서도 국적을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함께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 늘 고민입니다. 그 고민이 산지니의 좋은 책들이 대만 독자들을 만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
|
부산도서관에서 열린
<책씨앗 우리들의 패밀리데이 in. 부산> 수서전에 다녀왔습니다! |
|
|
2026년 7월 23일 부산도서관에서 열린 책우패 실물수서전에 참여했습니다. 부산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의 사서분들과 만나고 산지니 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산지니를 알고 계시고, 산지니 책 수서했다는 말을 들으니 힘이 났습니다💚 앞으로도 도서관에서 산지니 책 만나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
권영현 지음
부산 영도의 영세당 한약방에서 육십여 년 동안 한약사로 일해온 권영현 저자가 여든여섯에 첫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얼어붙은 입』은 노년이 되어 ‘나’를 찾고 싶은 마음으로 글쓰기 교실의 문을 두드린 뒤, 글을 쓰며 비로소 자신을 마주하고 그리운 부모와 사랑하는 가족, 지금은 곁에 없는 친구, 그리고 ‘나’를 되짚어 가는 기록이다. 작가의 글쓰기 스승인 정영선 소설가가 추천사를 썼다. "‘얼어붙은 입은 언제 녹을까’라는 마지막 문장을 볼 때마다 내 입이 다 얼얼해졌다. 그 나이에도 이런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니, 육십 넘은 소설가인 나의 새 희망이다."
|
|
|
우리, 다음 생에 만날까요?
박영해 장편소설
돌연 곁을 떠난 첫사랑에게 45년 5개월 만에 보낸 문자. "통화할 수 있을까요?"
남 보기엔 별문제 없이 살아 왔다고 여겼던 지난 세월 아래에는 삭이지 못한 채 가라앉아 있던 물음이 있었다. 소설은 오래도록 스스로에게조차 묻지 못했던 질문 하나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이 한 사람의 생애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담담하게 묻는다.
|
|
|
청사포 해녀 할머니
꿈꾸는 보라매 31
장수지 글, 그림
삼십 년 만에 고향 청사포로 돌아온 ‘할머니’는 어린 시절 물개처럼 헤엄치고 놀았던 바다에서 해녀 일에 처음으로 도전한다. 오랜만에 뛰어든 고향 바다에서 할머니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바닷속 풍경을 만나지만,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청사포의 거센 물살에 덜컥 두려운 마음도 든다. 할머니는 해녀 일을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을까?
|
|
|
주변부의 담론에 귀기울이는 반년간 비평지 <문학/사상> 13호: 바다의 노모스가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13호는 바다를 단순한 배경이나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세계 질서와 경계, 이동과 위험, 기술과 미래가 교차하는 사유의 공간으로 호출합니다. 자세한 사항과 구독 신청은 위 이미지 클릭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학/사상>의 행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문학/사상>과 함께할 구독자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
<유예된 죽음>의 기대평이나 후기를 들려주세요.
아래 버튼을 클릭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