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 소식 198호
스캠 사기에 관해 우리가 간과하는 것들
<스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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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스캠을 비롯한 스캠 사기는 더 이상 동남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근 연구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스캠 단지로 악명을 떨치던 기업들이 아시아, 중동으로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검색창에 ‘스캠’을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는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을 포함해 한국에서도 스캠 사기 피해 사례가 급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기사를 읽다 보면 이러한 일관된 사기 수법에는 절대 속지 않을 것 같다가도, 이제는 구별하기 어려워진 AI의 제작 결과물을 보면 속지 않는 게 더 어려울 것도 같습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뉴스레터에서는 동남아시아 스캠 단지에서 탈출한 97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르포르타주와 학술 서적 사이에서 논지를 이어가는 <스캠> 이야기를 전합니다. 극도로 불안한 경제 배경, 이미 두꺼운 교재가 될 정도로 치밀하게 설계된 로맨스 스캠 교본, 극심한 스캠 단지 내 노동 환경 이야기를 읽다 보면 뉴스에서만 보던 스캠 사기가 정말 우리 주변에 만연하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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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에는 이러한 수수료 체계와 보너스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스캠 사기 조직 내부의 노동 과정은 일선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든 비자발적으로 참여했든, 회사와 이들의 관계는 예외 없이 부채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회사가 이들을 범죄단지로 데려오기 위해 항공권, 비자, 노동 허가 비용을 부담하거나 브로커 및 밀입국 조직에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_226쪽, <범죄 단지의 내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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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캠>은 스캠 사기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스캠 사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모두를 분석하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적인 관계 구성이 갖는 폭력의 일면을 탐구합니다. 피해를 입힌 사람이 피해자라니 조금 이상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이는 스캠 사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아니라 부추기는 악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취업 사기로 스캠 단지에 붙잡힌 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한국이 스캠 산업에 관심을 크게 가진 계기 또한 취업 사기로 스캠 단지로 팔려간 대학생의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세 연구자는 이 지점에서 더욱 나아갑니다.
스캠 사기로 팔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식에 새로운 논점을 제시하는데요. 사기당하는 이들은 학력이 낮을 것이라는 시선을 비틉니다. 실제 피해자들을 살펴보면 고학력자의 비율이 높다고 합니다. 다만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스캠 사기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당장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절실한 이들이 스캠에 더 취약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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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를 쓰면서 마음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올해 한국에서 발생한 스캠 사기 사례를 기사에서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데요. 다양한 스캠 사기 중 가장 많은 피해 사례는 여전히 로맨스 스캠입니다. 데이팅앱을 가장해 친밀감을 쌓으며 피해자에게 소액 투자를 통해 이익금을 전달하는 방식인데요. 30만 원을 투자하면 도매업에서 얻은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잠시 후 이익금 40만 원을 전달하며 피해자와 신뢰를 쌓습니다. 투자요구금액은 점차 노골적으로 커지고 이를 거부할 경우 수수료를 핑계로 돈을 갈취한 뒤 잠적하는 방식입니다. 세 연구자는 스캠 사기가 마치 시나리오 작법 서적처럼 잘 정리되어 수법이 너무 견고하다고 지적합니다.
<스캠> 편집에 참여하며, 지인들에게 정말 사소한 이득을 주는 온라인 관계라도 조심하라는 당부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자들이 가장 문제라고 지적하는 지점은 스캠 사기 산업이 전혀 모르는 타인을 대상으로도 하지만 지인, 가족 구성원을 끌어들이는 사례도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스캠>은 마냥 편한 마음으로 읽기는 어렵고 불편한 책입니다. 하지만 이 산업이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속여 왔고 피해자는 어떻게 되었는지, 피해자는 어떻게 고립되고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톺아볼 지점은 무엇인지를 <스캠>은 제공합니다.
2019년 8,400건이던 ‘관리 미제’ 사기 범죄가 2024년엔 94,000건으로 증가한 반면 사기 범죄 검거율은 2019년 73.9%에서 60.3%로 줄었습니다. 스캠은 더 이상 다른 나라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급증하는 스캠 산업을 더욱 선명하게 알고 싶은 독자 여러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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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스캠의 실제 규모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피해자들이 신고를 꺼리는 데다 국가마다 집계 기준과 법 집행 방식이 달라 일관된 통계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캠’은 이 빈틈을 생존자들의 육성으로 메우며, 온라인 사기를 단순한 금융 범죄가 아니라 사람을 사고팔고 감금하는 현대판 인신매매로 바라보게 만든다.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딥페이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온라인 사기는 앞으로 어디까지 악화될까.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묵직한 책이다.
이제는 스캠이 하나의 산업이라 불릴 만큼 성장하고, 해외 각국에 그 피해가 널리 알려지면서 범죄 조직이 노리는 목표도 달라지고 있다. 책은 “더 어린 연령대가 이 산업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스캠과 관련한 다수의 특집 프로그램, 분석 기사가 나왔다. 책은 스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나 분석을 제시한다기보단 과거부터 이어져 온 이 범죄의 구조를 체계화한다. 일종의 범죄동향보고서 같다는 느낌도 든다.
스캠 피해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메신저를 통해 ‘로맨스·투자·코인·외환(FX)’ 같은 명목으로 유인되고, 배후에는 중국·동남아 조직과 전직 온라인 도박 업계가 구축한 콜센터·서버·결제망이 결합해 있다. 이 ‘공장 같은’ 시스템을 굴리는 노동력은 인신매매·강제 노동으로 끌려온 이들로, 이들 역시 피해자이자 동시에 사기 행위에 동원되는 가해자로 기능한다는 점이 이 산업의 잔혹한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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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캠초국경 사이버 범죄의 메커니즘을 파헤치다
이반 프란체스키니, 링 리, 마크 보 지음 | 이정우 옮김
2025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이버 범죄 스캠. 세계 각국 정부가 스캠의 완절한 근절을 위해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캄보디아의 범죄조직들은 인접국으로 이동하며 범죄를 이어가고 있다. 왜 이 범죄는 근절되지 않는가. 답은 스캠을 사기 수법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으로 볼 때 비로소 보인다. 호주 멜버른대의 중국학자 이반 프렌체스키니와 동남아시아 연구자 링 리, 마크 보는 이 책에서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태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일어나는 스캠 사기의 기원과 스캠 사기가 단절되지 않는 이유를 세밀하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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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 열린 <스캠>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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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7일, 부산외국어대학교와 전북대학교 동남아연구소가 함께하는 2026 전북대 동남아언어여름캠프 지역설명회를 다녀왔습니다. 세 번째 지역설명회는 최근 한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었던 동남아시아 초국경 사이버 범죄 ‘스캠’을 주제로 잡았는데요. 동남아시아 지역을 연구하고 있는 이반 프란체스키니(Ivan Franceschini), 링 리(Ling Li), 마크 보(Mark Bo)가 쓴 <스캠>을 한국어로 옮긴 이정우 역자가 특별 강연을 했습니다.
“스캠 단지 안은 대략 이렇게 구성됩니다. 일단 부서장이 있고 핵심 매니저가 있습니다. 핵심 매니저들이 돈을 뜯어내요. 이런 프로그램 디자인은 이 두 위계에서 만든다고 보시면 되고요. 그 밑에 스캠 노동자들을 조종하고 고문하는 사람들이 팀리더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들은 화장실 쓰는 데도 돈을 매기고, 앉는 의자에도 돈을 매기고, 컴퓨터 키보드에도 돈을 매기고, 쓰고 있는 바닥 면적에도 돈을 매겨요. 그리고 심지어는 바깥 공기에 대해서부터 돈을 매깁니다. 그러니까 이건 벗어날 수가 없어요. 결국 악순환의 악순환입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포획된 시장, 컴파운드 캐피탈리즘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포획된 이가 여기 잡혀서 평생 나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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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편집자는 무엇을 읽고, 보고, 쓰고, 어디에 갈까요? ‘편집자의 쪽지’에서는 그들의 일상에서 발견한 소소한 취향을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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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 편집자
말랑이, 스퀴시, 슬랑이.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요즘 문구점이나 다이소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그 장난감, 산지니에도 소소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원고를 보다가 한 번 꾹꾹, 회의 들어가기 전에 한 번 꾹꾹. 저는 굳이 꽈드득하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크런치말랑이’를 골랐습니다. 슬라임 안에 알갱이 같은 작은 입자가 들어 있어 만질 때 나는 와그작 소리가 은근 중독성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비슷한 유행이 예전에도 있었죠. 스트레스볼이나 슬라임이라는 이름으로요. 이름은 바뀌어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손에 뭔가를 쥐고 꾹꾹 누르다 보면 신기하게 감각이 손끝으로 몰리면서 머릿속을 떠돌던 잡생각들이 슬그머니 잦아듭니다. 복잡한 생각들은 휴지통으로 슉 사라지고, ‘말랑말랑 꽈득꽈득’하는 단순한 생각만 남아 있습니다.
현실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몸도 정직하게 반응합니다. 어깨는 저도 모르게 잔뜩 굳어 있고, 미간에는 주름이 잡히기도 하고요. 그럴 때 책상 위 말랑이 하나 집어 드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의외로 효과가 좋더라고요. 잠깐이나마 어깨에 힘이 풀리고, 굳었던 표정도 살짝 풀어지거든요. 딱딱한 하루 사이사이에 말랑한 순간을 하나씩 끼워 넣는 것. 어쩌면 이게 요즘 말랑이 유행의 진짜 이유 아닐까요. 거창한 힐링까지는 아니어도, 잠깐 몸을 노곤하게 해주니까요. 여러분의 책상 위에는 어떤 힐링템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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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트엉하 지음 | 배양수 옮김
베트남의 젊은 여성 작가 트엉하의 장편소설이다. <표류>는 베트남-중국 국경전쟁, 팔레스타인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사한 영혼들을 통해 국제 질서 수호를 외치는 전쟁의 명분과 당위가 회피와 외면으로 이어지는 지점을 포착한다. 소설 속 주인공인 작가 람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이 세계를 오랫동안 떠돌던 영혼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람이 기록하는 문장은 잊힌 자들을 위한 작은 제사이며 그들이 다시 한번 세상에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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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과 9월 사이
산지니시인선 032
안효희 시집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존재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 온 안효희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이번 시집은 57편에 걸쳐 현실과 초현실, 이곳과 저곳, 8월과 9월 사이,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존재들의 자리를 묻는다. 시인은 “지도에 없는 나를 찾아 평생을 헤매었다”고 고백하며 등이 굽고 눈이 먼 채로 안개 가득한 현실 속을 지나온 시간을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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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이해하는 프로파간다
선전의 예술과 설득의 기술
다툭 부디만 모하메드 조디 지음 | 정상천 옮김
'프로파간다'라는 말에 대부분은 부정적인 인상을 떠올리지만, 사실 선전은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분법적 분류로 규정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 책은 선전을 역사를 거듭하며 발전해 온 실용적 기술로 바라보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선전의 의미와 역할을 검토한다. 뿐만 아니라 선전에 대한 연구자들의 다양한 관점, 고대부터 존재했던 선전의 변천사,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선전의 종류를 구체적 사례와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대중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그림자 속에서 행해지는 선전의 본모습을 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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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의 담론에 귀기울이는 반년간 비평지 <문학/사상> 13호: 바다의 노모스가 출간되었습니다. 이번 13호는 바다를 단순한 배경이나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라, 세계 질서와 경계, 이동과 위험, 기술과 미래가 교차하는 사유의 공간으로 호출합니다. 자세한 사항과 구독 신청은 위 이미지 클릭 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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